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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설교 모음

요한계시록 강해(8) - 서머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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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8) - 서머나 교회

 

에베소 교회

성경구절 - 요한계시록 2:8~11

               Holy BIBLE 생명의 삶 영어 한글 성경 말씀 - 요한계시록(Revelation) 2장

 

요한의 영감 속에 주어진 ‘서머나 교회를 만나게 됩니다.

 

 

 

 

 

Ⅰ. 역사적 고찰

서머나는 에베소 북방 35마일 지점의 깊은 만에 위치하고 있는 고대의 아름다운 항구도시로 포도주의 집산지였습니다. ‘아시아의 영광’이라고 불릴 만큼 그 도시의 짜임새와 지리적 여건이 아름다웠습니다.

서머나의 바다 끝에는 시벨리(Cybele) 신전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도중에 아폴로, 아스클레피오스, 아프로디테 신전 등이 있었고, 거리와 산기슭이 맞닿는 곳에는 여러 제우스 신전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서머나는 유명한 경기장, 도서관, 공중 극장 등과 호머(Homer) 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므로 사람들에게는 호머의 출생지라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고대 문화의 도시였습니다.

또한 서머나는 고대 소아시아 도시들 중 도시 행정의 표본 도시로 또 자유시, 순회 재판 개정 도시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특별히 서머나 도시에는 기독교인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두 가지 세력이 있었습니다.

그 하나는 황제 숭배였습니다. 서머나는 황제 숭배 중심 도시로 ‘로마 정신은 로마의 황제’라고 일컬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황제는 서머나 시민들에게 ‘주’(主, κυριός)였습니다.

또 하나는 유대주의였습니다. 서머나에는 다수의 유대인들이 집단적으로 군거하므로 반기독교 운동의 세력을 이루었습니다. 폴리갑 교부는 저들의 간계로 순교를 당했습니다.

주님은 물질이 풍부하고 아름다운 문화의 도시, 정치적인 황제 숭배의 도시, 반기독교집단인 유대주의자들이 살고 있는 이곳 서머나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Ⅱ 서머나 교회의 진상

 1. 서머나 교회에 나타나신 예수는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주로 오셨습니다.(요한계시록 2:8)

 

극한 수난의 교회에 수난당하시고, 승리하신 주님으로 오셨습니다.

 

 2. 서머나 교회의 형편입니다.

서머나 교회에는 환난이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9절에 「내가 네 환난과」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때문에 겪는 ‘죽음의 압력’을 뜻합니다.

서머나 교회에는 궁핍이 있었습니다. 2장 9절에 「네 궁핍과」라고 하였습니다. 이 궁핍이란 환난과 핍박의 결과로 오는 극도의 가난을 의미합니다. 저들은 유대주의자들의 간교 때문에 집단적인 습격과 폭격을 당했습니다. 자유의 억압, 인권의 유린, 재산의 늑탈을 당했습니다. 가난과 훼방! 투옥과 순교! 인권의 유린과 자유의 유린! 가산의 탕진! 이것들은 서머나 교회가 예수 신앙 때문에 겪는 이 세상에서의 환난과 궁핍이었습니다.

 

 3. 그러나 영적인 부요도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9절에 「…실상은 부요한 자」라고 했습니다. 그 부요는 영의 부요였습니다. 믿음의 부요요, 소망의 부요요, 사랑의 부요였습니다. 충성의 부요였습니다. 현재의 고난, 장차의 영광이었습니다.

 

 4. 유대인의 집단인 ‘사단의 회’가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9절에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훼방’은 ‘모략과 중상’을 뜻합니다. 유대인들은 경제적인 미끼로 로마의 권력을 등에 업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독교인들을 박해하였습니다. 폴리갑이 순교할 때도 저들은 이방 폭도들과 합작하여 거의 불타서 죽은 시체마저도 신자들에게 돌리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들 중에 한 아류가 「니골라당」(요한계시록 2:6)이라고 했습니다.

저들은 교회를 대적하는 자였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3절에 이러한 진리 분별과 투쟁을 위하여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이 있었습니다.

 

고맙게도 서머나 교회의 이러한 진상을 주님이 아신다고 하였습니다(요한계시록 2:9). 바로 이 사실이 서머나 교회의 위로요, 활로였습니다.

 

 

 

 

 

Ⅲ 서머나 교회에 주어진 권면입니다.

 

  1. 남은 10일간의 환난을 두려워 말라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서머나 교회에는 아직도 영전(靈戰)이 남아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남은 환난은 마귀가 주장한다고 했습니다. 이 환난의 내용은 투옥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 기간이 길지 않고 짧을 것을 뜻합니다. 그럼에도 죽음을 지불할 정도로 격한 환난이라고 하였습니다.

 

 2. 승리하는 비결은 「죽도록 충성」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죽기까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신실 곧 신앙을 요구하였습니다.

폴리갑은 이때 죽기까지 충성한 지도자였습니다.

폴리갑이 잡히던 날은 축제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군중들은 몹시 흥분하여 들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무리 중에서 기독교 감독 폴리갑을 잡으라는 함성이 높아 갔고 그는 체포되었습니다. 이때의 주모자는 물론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는 도피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도피하지 않고 무리 가운데서 분명히 자기가 서머나 교회의 감독 폴리갑이라고 밝혔습니다.

군중들을 선동하던 유대인들은 “이 자는 아시아의 선생이요, 기독교의 아버지며, 신들의 파괴자이다. 이 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황제예배도 실행치 말라고 가르친 자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때 폴리갑에겐 가이사 황제에게 분향하든지, 아니면 화형을 받든 지 하라는 양자택일이 주어졌습니다. 그때 그는 다음과 같은 불멸의 위대한 대답을 남겼습니다.

“나는 86년간이나 그리스도를 섬겨왔다. 그런데도 그리스도께서는 나에게 한 번도 잘못하시거나, 나를 모른다고 하신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찌 내가 나를 구원해 주신 나의 왕을 모독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습니다.

그날이 유대인의 안식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폴리갑을 불태울 나무를 쌓고 기름을 붓기에 열심이었습니다. 화형장에 나가면서 폴리갑은 악도들에게 이르기를 “괜찮다. 나는 한 동안 타다가 잠시 후면 꺼지고 말 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너희들은 왜 지체하느냐? 자! 와서 너희 뜻대로 하려무나.”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에 불길이 그의 시체를 휘감자 그는 위대한 기도를 하였습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나이다. 주께서 은혜롭게도 나를 이 날과 이 시간에 합당한 자라고 여기셨음이니이다. 그리하여 나는 수많은 순교자들의 반열에 들게 되고, 주 그리스도의 집에서 분깃을 얻게 된 것을 감사하나이다.”라고 하면서 그의 최후를 마쳤습니다.

 

폴리갑은 죽도록 충성하라는 주님의 요구에 저렇게도 기쁘게 응답하였던 것입니다.

 

Ⅳ. 서머나 교회를 향한 주님의 약속과 허락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생명의 면류관」이라고 함으로 썩지 않고 영원히 빛나는 축복의 상급을 의미합니다.

다시 주님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요한계시록 2:11)라고 하였습니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요한계시록  2:11)고 하였습니다. 여기 「둘째 사망」은 영과 육이 아울러 지옥 불에 던져지는 영원한 죽음을 가리킵니다.(마태복음 10:28, 요한계시록 20:14, 19:2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서머나’란 ‘머드’를 뜻했습니다. 그것은 시체 위에 태우는 약초를 의미했습니다. 이는 죽기까지 충성한 서머나 교회의 영적 절개를 암시하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는 서머나 교회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수난받는 교회가 죄와 타락에 빠지지 아니함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이 세상에서의 박해는 하늘의 부요를 누리는 첩경임을 배우게 됩니다. 수난받는 십자가의 교회는 책망이 없고, 칭찬과 격려와 축복의 약속이 있음을 배우게 됩니다.

 

‘충성’이란 단어는 끝까지 가는 바른 관계(시간 관계), 일사각오의 바른 관계(의지 관계)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신앙과 그 말씀과의 관계’입니다. 그 충성만이 주님의 교회를 지키는 위대한 승리의 보루가 됩니다.

 

경향교회

석원태 목사

 

<<설교 영상 - 요한계시록 강해(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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