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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설교 모음

요한계시록 강해(19) - 찬양과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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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19) - 찬양과 영광

 

찬양과 영광

성경구절 - 요한계시록 4:8 ~ 11

                 Holy BIBLE 생명의 삶 영어 한글 성경 말씀 - 요한계시록(Revelation) 3장, 4장

 

하늘의 보좌는 그 영광이 네 생물들의 찬양과 24 장로들의 찬양으로 절정에 달하고 있습니다.

I. 이 찬양의 특색이 무엇인가?

  1. 하늘 보좌에서 불려지는 찬양입니다.

요한계시록 4장 9절에는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4장 10절에는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찬양했습니다.(요한계시록 4:11)

말하자면, 천국에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그것은 새 노래입니다.(요한계시록 14:3) 더 좋은 곡조와 더 좋은 내용의 노래입니다.

그것은 죄악에서 제한을 받으면서 부르는 노래와는 다릅니다. 새 맛이 있는 노래요, 영광의 노래요, 승리가 충만한 노래입니다.

 

 

 

 

 

 

 

  2.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들의 찬양입니다.(요한계시록 4:8, 11)

구원 사역에 동참하고, 그 구원 은총에 감복한 자들만이 부르는 찬양입니다. 지상교회에서는 진정한 구원 은총이나 구원 사역에 동참하지 못하고 부르는 찬양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이 찬양은 완전 영화의 상태에서 그 구속의 진가를 체험한 순결한 무리가 부르는 찬양입니다.

 

  3. 밤낮 쉬지 않는 찬양입니다.(요한계시록 4:8-10)

어떻게 밤낮 쉬지 않는 찬양을 할 수 있을까?

 

첫째 이유는, 찬송 받으실 하나님이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영존의 신이기 때문입니다.(요한계시록 4:8, 9)

그러므로 우리도 천지 만물이 있음을 찬양하기도 하지만, 천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찬양함을 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둘째 이유는, 찬송 부르는 자신들이 영물이고, 영생하는 성도들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기업의 자녀들이요, 수종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이유는, 찬송의 조건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곧 찬송의 주제가 어린양 예수의 보혈이기 때문입니다. 그 보혈의 공효가 영원합니다.

그것이 영원할 동안 그 보혈의 속죄 은총을 입은 자들은 영원히 찬송할 것입니다.

구속의 공효에 대한 만족의 효과가 영원할 동안 보은에 대한 감격의 찬양 역시 영원할 것이 아닌가?

 

  4. 예배 중심의 겸손한 찬양입니다.(요한계시록 4:10)

엎드려 경배하고, 면류관을 던지면서 올리는 찬양입니다. 실로 신본주의의 찬양입니다.

자기의 감정 충족이나 이기심을 위한 찬양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는 찬양입니다. 영광 위주의 찬양입니다.

 

 

 

 

 

 

 

II. 이 찬양의 내용이 무엇인가?

  1. 네 생물들의 찬양 내용은 하나님의 본질(속성)에 있습니다.(요한계시록 4:8 ~ 9)

그것은 첫째로 하나님의 거룩을 찬양했습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요한계시록 4:8)라고 찬양했습니다. 완전하신 삼위 하나님을 나타냈습니다. 여기 ‘거룩’은 하나님이 피조물과 구별(단절)됨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피조물들이 거룩한 것으로(역대상 26:29), 거룩한 예복으로(역대하 20:21), 거룩함을 좇음으로(히브리서 12:4) 하나님께 예배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피조물이고 죄인임을 직시해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전능을 찬양했습니다.

「전능하신 이여」(요한계시록 4:8)라고 했습니다. 그의 전능은 창조와 통치와 보존과 섭리에서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무능한 피조물임을 직시해야 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영원성을 찬양했습니다.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고 했습니다.

‘전에도 계신’ 하나님이란, 만물 존재와 성도 존재의 근원임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의 근거입니다. 그래서 시편 성도는 「하나님은 예로부터 나의 왕이시라 인간에 구원을 베푸셨나이다」(시편 74:12)라고 했습니다.

‘이제도 계신’ 하나님이란 현실성 있는 관계를 맺고 있는 살아 계신 인격적 하나님이심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항상 같이 있으리라」(마태복음 28:20)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시편 성도는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시편 68:19)라고 했습니다.

‘장차 오실’ 하나님이란 우리 소망의 근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소망이신 하나님이라고 한 것입니다.

영물들은 하나님의 영원성을 찬양했습니다. 그는 ‘세세토록 사시는 이’(요한계시록 1:18, 4:9), 곧 ‘영생하시는 자’(다니엘 4:34)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유한을 노래하는 이 세상 허무주의자들이 아니라 무한을 노래하는 영원한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2. 이십사 장로들은 하나님의 창조를 노래했습니다.(요한계시록 4:11)

  첫째로 저들의 찬양하는 태도를 보라.

저들은 엎드려 경배하는 겸손의 찬양을 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태도는 동방박사(마태복음 2:11), 은총을 입은 열 사람 중에서 보은 할 줄 알았던 한 사람 문둥이(누가복음 17:11-16), 큰 믿음의 은총을 입었던 수로보니게 족속의 여인(마태복음 15:28)에게서 볼 수 있었던 겸손입니다.

위주 영광의 찬양 태도입니다. 승리는 내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 자신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승리 후의 영광을 자기의 것으로 삼으려고 싸움을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승리 후의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만 돌립니다. 그 이유는 승리의 근원이 오직 예수뿐이기 때문입니다.(요한계시록 5:5, 요한복음 16:33)

그러므로 우리는 승리하는 것은 중대하게 생각하지만 승리 후의 영광을 처리함에도 조심하면서 움직입니다.

 

  둘째, 저희의 찬양 내용은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라고 하는 것이다.

만물이 주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주 하나님에게만 모든 영광과 존귀와 능력이 돌아감이 합당하다고 했습니다.

 

언제 이런 고백적인 찬송이 나옵니까?

 

  첫째, 존재의 원인을 확신할 때입니다.

저들은 고백하기를 ‘우리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고 했습니다. 우주의 근원(arche)이 하나님 자신이라고 했습니다.

 

  둘째, 존재의 목적을 깨달을 때입니다.

저들은 고백하기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다.’라고 했습니다. 목적 없는 존재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셋째, 피조물의 존재 의의를 바로 알 때입니다.

저들은 고백하기를 ‘주의 뜻대로 지으심을 받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주인을 모르거나, 주인을 모른다고 하거나, 없다고 하는 것만큼 불안하고 답답한 것은 없습니다. 주인 없는 물건을 볼 때 도둑질할 마음이 생깁니다. 거기에 찬송과 감사가 없습니다.

또한 그 물건의 내막을 모르는 것만큼 불안하기 그지없습니다. 거기에 감사나 찬송이 있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주인 없는 물건은 가치 없는 오물이거나 내버려진 몹쓸 폐물입니다. 거기에 무슨 감사, 찬송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범신론자들에게는 공포의 신, 불안의 신, 벙어리의 신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세계에서 찬송, 감사를 들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진화론자들도 그들 중의 하나입니다. 저들은 말하기를 인간의 성품은 선한 것으로 점점 진화되어 가기 때문에 결국 잘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진화론자들의 생각은 결국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 아닌 물상(物像)으로 전락시키고 말았습니다.

루소의 자연주의는 이런 류의 것입니다.

인간이 신상(神像)이 아닌 물상으로 전락될 때 거기에서는 진정한 신앙과 경배, 감사, 찬송을 들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저들은 또 말하기를 적자생존을 주장합니다.

그것은 결국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약육강식의 생존의 원리입니다.

이것은 결국 인류를 파멸의 지경으로 이끌고 맙니다.

그것은 무서운 독재주의의 온상입니다.

이 원리를 역사 진화 원리에 적용한 자들이 세기적인 폭군으로서 독재와 폭정을 감행했습니다.

히틀러는 결국 진화론자들의 후손이 되었습니다.

공산주의의 유물론 이론도 진화론의 산물 중 하나입니다.

칼 마르크스의 인간의 자율 투쟁 원리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런 것에 무슨 신뢰와 감사와 찬송이 있겠습니까?

 

더욱이 진화론자들은 인간을 우연과 자연 발달의 산물로 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을 외면합니다.

그래서 결국 인간에게는 선, 도덕성, 영성, 종교성이란 있을 수 없고, 단순히 진화된 물성(物性)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저들은 이렇게 인간이나 만물의 피조성을 모른다. 우연 발생이나 진화를 믿는 것입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존재의 원인), 주로 말미암고(존재의 의의), 주에게로 돌아감(존재의 목적)(로마서 11:36)을 모르거나 부인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감사 찬양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물들은 하나님의 속성(거룩성 + 전능성 + 영원성)을 찬양했습니다.

이십사 장로들은 하나님의 창조(존재의 원인 + 의의 + 목적)를 찬양했습니다.

 

경향교회

석원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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